24.11.25 (월)
16절)
'그래서 요압은 적군의 성을 포위 공격할 때 적의 가장 강한 반격이 예상되는 지점에 우리아를 배치시켰다. '
[ 사고하는 용기 ]
다윗은 욕정에 말로가 좋지 않았다.
그 과정을 담은 구절이 사무엘 하 11장 이다.
밧세바에게 반한 다윗은 남편인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만든다. 자신의 과거 사울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똑같이 우리아에게 범죄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신하였다.
그 과정에서 요압이라는 인물이 있다.
요압은 다윗이 시킨대로 행했다. 군인이고,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요압 조차도 하나님보다 왕이라는 인물을 섬겼다. 나였어도 요압의 상황에서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부하인 우리아만 최전방으로만 돌리면, 나의 삶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전범자로 몰락한 나치의 장교들은 이런 핑계를 댄다. 자신은 시키는 일만 한것이라고, 나에게는 죄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옳은 말을 내는 용기를 내지 못 했다. 주변 사람이 그러하니, 다른 사람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았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것에 동참했다.
지금 사회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사고하지 않는 다면, 요압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있는 듯하다. 대전 지사이다. 실장님이라는 실세가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편은 가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괴롭히는 것이다. 자신의 측근들만 챙기고, 정보전달의 의무를 소홀히 한다.
(물론 내 개인적인 평가이다.)
나도 불만이 쌓이고, 입이 삐쭉 나올 때가 많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삶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직장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옳은 말을 할 줄 알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로볼줄 아는 시야를 길러야 겠다.
화가 차오르는 오늘이지만,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 있음에 감사.
광대보다는 옳은 소리를 내보는 연습하기
하나 건강, 둘째 건강, 산모 건강